달리기와 뇌과학, 『길 위의 뇌』가 말하는 심폐체력의 힘

『길 위의 뇌』는 서울대 의대 경세희 교수와 뇌과학자 장동선이 함께 나눈 운동과 뇌 건강에 관한 깊은 대화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운동이 단지 체중 감량이나 건강 유지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뇌 건강과 직결된 중요한 ‘삶의 방식’임을 강조한다. 특히 ‘심폐체력’이라는 요소가 질병 예후와 생존율에 결정적이라는 과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간이 걷고 뛰기 위해 진화한 존재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달리기를 비롯한 유산소 운동의 효과, 컨택트 스포츠의 뇌 손상 위험까지 현실적인 조언과 과학적 근거가 풍부하게 녹아 있다.


길 위의 뇌



뇌 건강의 열쇠, 심폐체력이라는 숨은 지표

책 『길 위의 뇌』의 핵심은 단연 ‘심폐체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의 예후나 생존율을 예측할 때 나이, 성별, 기존 질환의 유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저자인 경세희 교수는 임상과 연구를 통해 이것보다 더 정확하고 강력한 예측 인자가 심폐체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최대 산소 섭취량(VO2 max)이라는 수치로 대표된다. 최대 산소 섭취량은 한 개인이 운동 중 몸 안으로 받아들여 사용할 수 있는 산소의 최대량을 뜻하며, 이는 곧 심장과 폐, 근육, 뇌를 포함한 전신의 건강성과 효율을 반영한다. 특히 이 수치는 단순한 체력의 지표를 넘어서, 암 환자의 생존율, 수술 후 회복 속도, 심지어 특정 질환의 발생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는 강력한 바이오마커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통찰은 뇌의 생리학적 특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뇌는 신경세포로 구성된 복잡한 신경 네트워크이자 동시에 ‘혈관 덩어리’이기도 하다. 뇌는 산소와 포도당의 공급이 차단되면 수 분 내에 손상을 입을 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심한 기관이다. 때문에 산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반하고 활용하느냐는 곧 뇌의 건강과 직결된다. 유산소 운동이 강조되는 이유는 단지 심장 건강 때문만이 아니라, 뇌혈관의 기능, 뉴로바스큘라 유닛(NVU)의 안정성, 나아가 뇌세포의 항상성 유지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경 교수는 단언한다. 환자의 생존율을 예측할 때 심폐체력을 ‘바이탈사인’ 수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실제로 수많은 임상 연구에서 최대 산소 섭취량이 낮은 집단은 고령자보다도 더 빠른 질병 악화와 사망률을 보였으며, 이는 단순히 생활 습관의 차이로 환원할 수 없는 생물학적 근거를 가진다. 뇌를 위한 운동이 곧 생존 전략이 되는 시대, 심폐체력은 더 이상 운동선수만의 지표가 아니다. 『길 위의 뇌』는 누구나 이 숫자를 알고 관리해야 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인간은 왜 달려야 하는가: 진화의 흔적 속 생존의 본능


경세희 교수는 뇌과학자로서가 아니라 인간 생리의 총체적 맥락을 짚는 의사로서, 인간이 왜 ‘달리기 위한 존재’인지에 대해 심도 깊은 고찰을 펼친다. 인간은 단지 걷는 생명체가 아니다. 진화의 역사에서 수렵채집 사회를 거친 인류는 하루에 평균 9~15km를 걷거나 뛰는 것이 정상적인 생활양식이었다. 생존을 위한 달리기, 식량을 좇는 지속적인 운동이 인간의 생리 구조를 결정지었다. 그 흔적은 현재의 신체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대표적인 예가 엉덩이 근육이다. 걷기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달리기에서 추진력을 생성하기 위해 반드시 동원되는 부위다. 인간의 엉덩이 근육은 다른 유인원이나 포유류에 비해 현저히 크고 강하다. 또한 인간의 종아리와 대퇴부에 존재하는 근육의 섬유 비율은 ‘지근’의 비중이 높아 장거리 달리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는 인간이 장거리 달리기를 위해 진화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책에서는 ‘대회 뽕’이라는 흥미로운 개념도 소개된다. 이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을 때 실제 체력 이상의 퍼포먼스를 내는 심리적 동기 부여를 말한다. 단지 기록 갱신 때문이 아니라, 응원과 경쟁, 집단적 움직임에서 오는 에너지 교류가 큰 역할을 한다. 달리기를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사회적 행동으로 바라보는 통찰도 엿보인다. 나아가 달리기는 뇌 건강과 감정 조절의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이는 ADHD, 우울증, 파킨슨병, 치매 등 각종 뇌 관련 질환에 운동이 예방적·보조적 치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근거를 가진다. 뇌와 혈관은 밀접한 구조로 연결되어 있으며, 운동은 이러한 연결 단위인 뉴로바스큘라 유닛을 건강하게 만든다. 결국 뇌에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며, 염증을 억제하는 기제가 모두 유산소 운동에 달려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운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인간은 본래 뛰도록 설계되었으며, 그 본성에 순응할 때 비로소 진정한 건강과 정신적 안정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길 위의 뇌』의 핵심 메시지다.


운동이 뇌에 미치는 이중적 영향: 해로운 운동은 없는가?


책은 운동이 무조건 뇌에 이롭다는 일반적인 통념에 반기를 들기도 한다. 실제로 뇌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입장에서 경세희 교수는 어떤 형태의 운동은 오히려 뇌를 손상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대표적인 예가 ‘복싱’이다. 복싱은 머리와 안면부에 반복적으로 타격이 가해지는 스포츠다. 이는 외상성 뇌손상을 누적시켜 만성 외상성 뇌병증(CTE)이라는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병은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며, 일반적인 노화와는 무관하게 젊은 나이에도 발병할 수 있다. 실제로 미식축구, 럭비, 아이스하키, 태권도 등 모든 ‘컨택트 스포츠’는 반복적 충격에 의해 뇌 신경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 경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스포츠 자체의 문제’가 아닌, 그 스포츠의 ‘접촉 형태’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복싱의 경우, 스파링 없이 미트 치기, 섀도 복싱, 발밑 이동 등을 중심으로 하면 오히려 파킨슨병 환자에게 운동 치료 효과를 보인다. 뇌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구성된 비접촉형 운동은 신체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도 유익하다. 이 지점에서 운동이 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조건은 명확해진다. 첫째, 유산소 중심의 장거리 운동일 것. 둘째, 뇌에 직접적인 외상을 가하지 않을 것. 셋째, 운동을 지속 가능하게 구성할 것. 이러한 조건을 충족한 달리기, 자전거 타기, 수영 등은 신체와 뇌의 생리학적 기능을 최적화한다. 특히 뇌는 신경뿐 아니라 감정, 집중력, 판단력, 사고력 등 인간의 모든 정신적 기능과 연결된다. 때문에 운동을 통한 뇌 건강 증진은 곧 삶의 질 향상과도 직결된다. 단지 병을 예방하는 차원을 넘어, 자기 효능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실천이기도 하다. 『길 위의 뇌』는 단순히 과학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독자의 삶을 직접 바꾸는, 과학적 근거를 가진 설득의 텍스트다.


길 위의 뇌, 삶을 위한 과학적 제안


『길 위의 뇌』는 뇌과학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인간 본연의 삶의 방식에 대해 되묻게 만든다. 단지 운동을 하자고 권유하는 차원이 아닌, 왜 우리가 뛰어야만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이는 책이다. 경세희 교수의 생생한 임상 경험과 깊이 있는 학문적 통찰, 그리고 장동선 박사의 날카로운 질문은 독자의 사고를 자극하며, 지금 당장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길 위로 나서야 할 이유를 납득하게 만든다. 『길 위의 뇌』는 건강한 삶의 기술이자, 뇌를 위한 가장 실질적인 예방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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