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옛 문장 속에 담긴 시대의 질문, 그리고 오늘의 답변
"한 시대의 가장 절박한 물음은, 그 시대가 가장 간절히 원한 인재에게로 향한다." 조선의 왕들이 젊은 선비들에게 던졌던 ‘책문(策問)’은 단순한 시험의 형식을 넘어선 시대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입신양명의 수단이 아닌, 조선을 바로 세울 지혜를 구하고자 했고, 선비들은 목숨을 걸고 그 답을 써내려갔다. 오늘날의 우리는, 과연 그런 진심어린 질문과 답을 교환하고 있는가?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는 500년 전 조선의 지식인들이 고민한 문제들을 오늘 우리의 문제로 다시 소환한다. 이 책은 그들의 답에서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읽어내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본론 1: 책문이란 무엇인가 – 시험을 넘어선 정치적 대화의 장
조선시대 고급관리를 뽑는 대과의 마지막 관문, ‘책문(策問)’은 단순히 암기력이나 문장력만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었다. 왕이 직접 출제한 질문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그 질문은 정치, 외교, 교육, 조직 개혁, 도덕적 리더십까지 다양한 국가적 과제를 포괄했다. 이 시험의 본질은, 바로 "당대의 가장 절박한 문제를 시대의 젊은 지성에게 묻는 것"이었다. 책문은 현대 면접시험과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그 깊이와 형식은 비교를 거부한다. 왕은 묻고, 선비는 대답한다. 하지만 그 문답은 권력자와 응시자의 관계를 넘어선, 지식인과 국가 사이의 진지한 대화였다. 이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관직에 오를 수 있었으며, 실제로 이 책에 실린 13편의 책문과 대책은 모두 당대 최고 수준의 정책 제언이라 할 수 있다. 책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상적 담론의 장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고민, 사회적 책임, 인간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었다. 법의 패단을 고치는 방안(세종), 공약을 끝까지 지키는 정치의 본질(중종), 외교관의 자질(중종), 교육의 방향(명종), 그리고 난세의 국가경영 방안(광해군) 등등. 그 질문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고민과 너무도 닮아 있다.
본론 2: 시대를 꿰뚫는 질문과 답 – 선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는 단지 과거 문서를 모아 엮은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왕들의 질문, 선비들의 답, 그리고 역자의 해설과 시대적 배경을 한 문맥 안에 담아 독자에게 깊은 사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단순한 역사서가 아닌, ‘지식인의 책임’에 대한 성찰의 장인 셈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각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해법을 어떤 철학적 기반 위에서 제시했는지다. 세종 시대 성상문은 백성의 삶을 지탱하는 제도적 정의를 강조하며,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치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조광조는 도학자로서의 이상정치를 꿈꾸며 왕에게 “진정한 정치는 참된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직언한다. 또한, 광해군의 책문에서 확인되는 시대적 위기의식은 놀랍도록 오늘의 언어와 맞닿아 있다.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정벌이냐, 화친이냐?”라는 질문은 국가의 생존 전략을 논하는 외교와 안보의 문제였고, 오늘날 국제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이 처한 과제와도 그대로 겹쳐진다. 책문 속에 담긴 선비들의 목소리는 감동적일 정도로 솔직하고 명료하다. 그들은 현실을 직시했고, 왕 앞에서도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 어떤 이는 왕의 리더십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어떤 이는 정책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그 용기와 치열함은, 지금의 어떤 정책 논의보다 더 진지하고 날카롭다.
본론 3: 왜 지금, 우리는 책문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옛 문서를 해설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은 “왜 지금, 우리는 과거의 문답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정치와 권력, 교육과 제도, 인재 등용과 민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저자 김태환은 율곡 이이의 실학적 사상을 연구한 철학자로서, 책문을 단지 시험이 아닌 ‘시대의 문답’으로 재구성한다. 특히 '책문 속으로'라는 섹션을 통해 단순히 왕과 신하의 문답에 그치지 않고, 당시 정치적 맥락과 인간적인 고민을 이야기로 풀어내 독자에게 몰입감을 제공한다. 예컨대, 책문에서 등장하는 신숙주와 성삼문의 서로 다른 태도를 비교하면서 ‘충성과 현실’이라는 주제를 조명하고, 광해군의 불안한 군주로서의 내면을 인간적으로 풀어내어 시대가 요구한 리더십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이런 방식의 구성은 이 책을 단지 ‘사료 모음집’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철학서로 끌어올린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국가는 그 시대에 필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며, 그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는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이것이 책문이 던지는 궁극의 화두다.
결론: 지금, 우리 시대의 책문은 무엇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질문을 받는다. 그중 대부분은 생계, 가족, 진로와 같은 일상적 물음들이다. 그러나 공동체 전체를 위한 질문, 국가와 사회를 향한 진지한 고민은 드물다.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는 그런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하는 이가 곧 진정한 인재라고 말한다. 책문은 더 이상 조선 시대의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묻는 방식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소통의 형식이다. 그 물음과 답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 우리에게 돌아온다. 독자는 단순한 책 소개를 넘어서, 깊은 통찰과 역사적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