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 서평 – 마음의 계절을 완주하는 문학적 여행

서론: 여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 당신은 완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유난히도 뜨거운 여름은 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햇볕은 강하고, 땀은 말라붙지 않으며, 무언가 시작하기엔 이미 모든 것이 한껏 달아오른 듯한 계절. 이 계절의 중심에서 『첫 여름, 완주』라는 소설이 조용히 말을 걸어옵니다. 시작은 소리였고, 끝은 마음이었다는 말처럼, 듣는 문학에서 읽는 문학으로 이어진 이 책은 우리가 각자의 ‘여름’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사유하게 합니다. 여름이란 계절이 지닌 고유의 외로움과 뜨거움, 그 속에 숨은 서늘한 생명력까지. 과연 우리는 마음의 여름을 ‘완주’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첫 여름, 완주

본론 1: 『첫 여름, 완주』 – 듣는 소설에서 읽는 문학으로

『첫 여름, 완주』는 그 기획 자체부터 매우 독특합니다. 시각장애인 독자를 위한 오디오북 제작에서 출발하여, 청취 가능한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낭독을 넘어, ‘연기하는 소설’로 진화했습니다. 배우들이 직접 각 캐릭터를 맡아 목소리로 연기하고, 배경음악과 대사가 어우러져 하나의 오디오 드라마처럼 구성된 이 작품은, 소설의 감정선과 정서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장애인 독자를 위한 첫 배포라는 점은 이 책의 정체성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책을 '먼저' 듣는 독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식은, ‘접근성’이 아닌 ‘존엄성’에 대한 문학의 새로운 실험이기도 합니다. 출판사의 진심 어린 노력과 배우들의 재능 기부가 더해져, 이 책은 하나의 문학 프로젝트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또한 책의 패키지 디자인도 눈길을 끕니다. VHS 케이스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 주인공 손열매의 일러스트, 그리고 책 뒷면에 실린 신영철 평론가와 아이유의 추천사는 그 자체로 이 책을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비주얼적 매력을 통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완주’의 감정을 더 강하게 끌어올립니다.

본론 2: 이야기 속 인물과 그들이 만든 여름의 풍경

 주인공 손열매는 친언니와 같았던 고수미에게 사기를 당하고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잃습니다. 집에서도 쫓겨나고, 직장도 잃고, 우울증 진단까지 받게 되죠. 그녀는 어느 날 문득 고수미의 고향인 전북 완주를 향해 떠납니다. 완주는 단지 지명에 그치지 않고, 이 이야기에서는 ‘마음의 완주’라는 복선처럼 작용합니다. 완주 마을에서 열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수미의 어머니, 동네 이장, 귀농한 배우, 불량한 듯 보이는 여중생들과 그 친구들. 그리고 산속에서 사는 의문의 남자 ‘어저귀’. 이 인물들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열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합니다. 각 인물은 그 나름의 그림자와 슬픔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에게 감정의 파문을 던집니다. 특히 ‘열매’라는 인물은 처음엔 망가져 있었지만, 점차 타인의 손길과 자연의 품 안에서 회복되어갑니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의 마음은 여름의 그림자처럼 그녀에게 응달을 내어주고, 우리는 그 응달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살아간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본론 3: 여름, 마음, 자연 – 그리고 '완주'라는 상징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여름’이란 계절이 지닌 이중적 이미지입니다. 여름은 눈부시지만 외롭고, 풍요롭지만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계절입니다. 그 안에서 주인공 열매는 마음의 사막을 건너듯 한 걸음씩 내딛으며, 자신을 구성하는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여름을 왜 식히넌 겨, 여름이 여름다워야 곡식도 익고 가을, 겨울이 넉넉해지지.” 열매가 만난 노인의 이 말은 단순한 농사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감정, 슬픔, 고통, 외로움까지도 삶의 순환 안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계절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통찰입니다. 억지로 식히려 하지 말고, 감정을 감정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를 단단히 다져가야 한다는 철학이 이 한 문장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자연의 리듬을 따르는 삶, 그리고 억지 없이 나아가는 완주. 그것은 레이스의 1등이 아니라, 자신만의 여정을 끝까지 걸어내는 용기입니다. 『첫 여름, 완주』는 그런 삶을 향한 따뜻하고도 단단한 응원을 담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여름을 완주하는 중이다

이 책은 단지 한 여성의 자아 회복기, 또는 시골 마을로 떠나는 치유 여행기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그것은 ‘완주’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다짐입니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은 사람, 이미 여름을 지나온 사람, 지금 이 순간 여름 한가운데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이라는 트랙을 달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돌아가지만, 결국 우리는 ‘완주’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첫 여름, 완주』는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너, 다음 계절을 맞을 준비가 되었느냐?” 이 질문은 결코 조급하게 채근하는 물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의 당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충분히 쉬었으면 다시 일어나자고 말해주는 따뜻한 손길입니다. 책을 덮은 순간, 독자는 자연과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시선을 조금 더 넓고 깊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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