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서평 - 강물처럼 흐르는 비밀, 상처,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


서론: 한여름의 강물 위, 침묵 속에 피어오른 의문


모든 이야기는 여름 강물 위로 떠오른 두 구의 시신에서 시작됩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번지는 강물, 그리고 그 속에서 엉켜 발견된 남녀의 죽음. 경상도의 가상 시골마을 '진평'이라는 조용한 배경 위에 펼쳐지는 이 서늘하고도 따뜻한 이야기는 정대건 작가의 장편소설 《급류》입니다. 2023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을 깊이 응시하며, 인간이 간직한 상처와 성장의 흔적을 섬세하게 추적합니다. 한 줄기 소문, 한 겹의 의심, 그 너머로 떠오르는 진실의 물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급류



본론 1: 진실과 소문의 경계선에서, 침묵을 뚫는 시선


《급류》의 중심에는 도담이라는 소녀가 있습니다. 그녀는 진평강 하류에서 아버지 최창석과 이웃 여성 전미영의 시신이 함께 발견되며 삶의 균열을 맞습니다. 창석은 17년차 소방관으로 진평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며, 도담의 듬직한 다이빙 파트너이자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전미영과 함께 발견된 그날부터 마을에는 온갖 소문이 무성하게 피어납니다. 불륜, 자살, 치정. 정작 진실은 누구도 알지 못한 채, 마을 사람들의 상상과 입방아는 끊이지 않습니다. 작가는 이 혼란의 중심에서 사건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오래 들여다봅니다. 도담이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은 매우 섬세하고 내면적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사고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자라왔습니다. 그 불안은 죄책감으로, 공포로, 사랑으로 엉켜 있었고, 결국 현실이 되어 그녀를 덮칩니다. 작가는 도담의 시선을 통해 한 인간이 짊어진 상처와 그 상처가 만들어내는 내면의 강물을 정밀하게 묘사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남겨진 자의 감정과 그 감정을 견뎌내는 과정임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본론 2: 상처와 용기의 다이빙, 중성 부력처럼 자유로운 삶을 향하여


《급류》에서 도담과 아버지 창석은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특별한 유대를 형성합니다. 창석은 도담에게 물에 뜨는 법, 가라앉는 법, 중성 부력 상태에서 떠 있는 법을 가르칩니다. 작가는 이 물속의 무중력 상태를 단순한 수중 스포츠를 넘어, 삶에 대한 철학적 은유로 끌어올립니다. 중성 부력, 즉 무게가 가라앉지도 뜨지도 않는 상태는 도담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자유의 감각이며, 삶을 향한 새로운 자세입니다. 그녀는 무서운 수중 세계에서 점차 평온함을 배우며, 삶의 불안정한 흐름을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 나갑니다. 바닷속 산호 사이를 유영하던 그 시절의 기억은, 상처와 상실 이후에도 도담의 내면에 남아 그녀를 붙잡아주는 단단한 닻이 됩니다. 작가는 이러한 도담의 경험을 통해 상처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용기를 그리고 있으며, 그 용기야말로 진정한 회복과 성장의 시작임을 조용히 전달합니다.



본론 3: 침묵 속의 서사, 공동체의 이면을 꿰뚫는 문학적 통찰


《급류》는 또한 시골 공동체라는 작은 사회가 가진 폐쇄성과 잔혹한 언어의 힘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진평 마을 사람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소설을 창조합니다. 경찰보다 먼저 수사하고, 작가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들 속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언어가 얼마나 쉽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지 비판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도담과 해솔이라는 또 다른 소녀는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살아갑니다. 해솔은 진평에 새로 이사 온 외지인으로, 도담이 아버지를 잃은 시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녀의 어두운 내면에 작은 빛을 비춥니다. 두 소녀의 우정과 연대는, 비극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희망과 치유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도담이 끝내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서사가 아닌, 감정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서사로 이어지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결론: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남겨진 이의 마음


《급류》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다루지만, 그 사건을 둘러싼 인간의 내면과 공동체의 무의식에 더욱 깊이 침잠하는 소설입니다. 특히 주인공 도담이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품게 된 죄책감, 두려움, 사랑, 미움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조용히 흐르는 서사 속에서 진실처럼 다가옵니다. 한 사람의 부재는 또 다른 사람에게 긴 시간의 파장을 남기며, 작가는 이 진동을 깊고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읽는 내내 "사람은 언제 자유로워지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작품은, 떠밀려 흐르던 인물들이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해 유영하게 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상처 입은 이들이 서로를 감싸 안으며 무지개를 찾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역시 삶 속의 금루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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