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눈부신 진보, 그러나 깊어지는 그늘
경제는 발전하고 기술은 나날이 정교해진다지만, 왜 대중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기만 할까요? 부의 총량은 증가했는데, 그 혜택은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간 걸까요?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더 편리하고 부유해졌지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최저임금에 의존한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모순을 정면으로 파헤친 책이 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상가 헨리 조지가 쓴 『진보와 빈곤』. 이 책은 단지 경제학의 고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겪는 사회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을 품고 있습니다.
본문 1: 빈곤의 역설, 토지의 독점에서 출발하다
헨리 조지는 단 하나의 질문에서 『진보와 빈곤』을 시작했습니다. "사회가 이렇게 눈부시게 진보하는데 왜 빈곤은 사라지지 않는가?" 그에 따르면, 이 질문의 답은 ‘지대(Rent)’, 즉 토지 가치의 독점에서 시작됩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생산성은 증가하고, 생산성 증가의 혜택은 대중에게 돌아가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노동자의 임금은 제자리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반면, 땅값은 천정부지로 오릅니다. 서울 강남이나 뉴욕 맨해튼의 부동산 가격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땅이 일을 합니까? 그렇지 않지요. 하지만 그곳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거액을 지불하고, 토지 소유자는 아무 노동도 없이 그 돈을 챙깁니다. 조지는 이것을 "사회적 강도질"이라고 불렀습니다. 생산의 중심지가 되는 토지를 소유한 사람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제활동의 결실을 가만히 앉아서 수확합니다. 반면, 실제로 땀 흘리는 사람은 늘 열매를 빼앗기고 맙니다. 이러한 구조가 지속되는 한, 진보는 곧 빈곤과 함께 오게 된다는 것이 조지의 핵심 주장입니다.
본문 2: 진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사회적 불평등의 작동 방식
조지의 이론은 단순한 경제 모델을 넘어섭니다. 그의 논리는 철학적이고, 때로는 신학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모두 창조주의 허락을 받아 이 세상에 왔다면, 우리 모두는 그 땅을 이용할 동등한 권리가 있다.” 이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사회 정의의 출발점입니다. 그는 리카도의 차액 지대론을 현대 도시 사회에 적용하면서, 빈곤이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심화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도시의 중심지가 커질수록 그곳의 토지 가치는 폭등하고, 그 토지를 가진 자는 사회적 기여 없이도 부를 축적합니다. 기술이 발달해도, 그 이익은 기계나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땅’에게 돌아가는 셈이죠. 그러므로 진정한 진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토지라는 자산을 어떻게 정의하고 나눌 것인가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의 주장은 명확합니다. 토지를 국유화하자는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만큼은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것입니다. 대신 소득세, 거래세 같은 다른 세금은 없애도 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조지는 ‘토지 단일세 운동’이라는 사회 운동을 촉진했고, 뉴욕 시장 선거에도 두 차례 출마했습니다.
본문 3: 조지의 꿈과 오늘의 현실 — 여전히 유효한 경고
조지의 사상은 마르크스의 급진적 개혁과는 달리, 점진적이고 제도적인 개혁을 제안합니다. 그는 토지 사유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이 공동체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사회는, 모두가 땅을 사용할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는 곳이었습니다. 이 사상은 단지 이론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의 글과 연설은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고, 토지 정의를 위한 시민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토지정의시민연대’와 같은 단체들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용산참사 같은 도시 재개발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그의 사상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19세기 미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사는 도시와 맞닿아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지대는 노동자가 망치질을 할 때마다 빠져나간다.” 이 절절한 문장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지대는 병든 자의 약값을, 추운 자의 난방비를, 굶주린 자의 식탁을 빼앗아 갑니다. 진보의 모든 과실은 결국 토지 소유자의 호화로운 저택으로 흘러 들어가고, 노동자는 여전히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갑니다.
결론: 조지는 옳았고, 지금도 옳다
『진보와 빈곤』은 시대를 초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왜 아직도 가난한가? 기술이 이토록 발달했는데도 말입니다. 조지는 삶의 핵심, 바로 ‘토지’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지대의 사유화는 살아 있는 자에게는 고통이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에게는 미래를 훔치는 일이다.” 근본적 변화는 아름다운 이상이지만, 그 도달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조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의 사상을 알리기 위해 생을 바쳤습니다. 그가 밝히고자 했던 진리는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우리 사회의 이정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