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기획과 마케팅, 결국은 사람을 향한다
마케팅과 기획, 그리고 디자인. 겉으로는 다 달라 보이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은 ‘사람을 이해하는 감각’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감각이 과연 훈련될 수 있을까요? 저는 최근에 읽은 『일의 감각』이라는 책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지침서나 이론서가 아닙니다. 기획과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가 실제 현장에서 마주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감각’을 길러왔는지를 이야기하듯 들려줍니다. 특히 ‘본질’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하는 태도와, 감각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제시한 부분은 마케터로서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1. 기획이란 무엇인가: 문제를 감각으로 포착하는 능력
『일의 감각』은 처음부터 독자에게 “기획은 결국 문제 해결의 감각”임을 강조합니다. 기획의 출발점은 화려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불편함’을 감지하는 섬세한 촉입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네이버 지하 주차장 프로젝트입니다. 여러 층으로 구성된 지하 주차장에서 사용자가 자신의 주차 층을 기억하지 못하는 문제는 너무 흔한 일이죠. 하지만 대부분은 “원래 그런 거지” 하고 지나쳐버립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일상적인 문제를 문제로 ‘인식’했고, 청각 경험을 활용하여 이를 해결합니다. 각 층마다 파도 소리, 새소리 등 특정한 소리를 부여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 그 소리가 다시 재생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이처럼 감각은 단순한 센스가 아니라, 문제를 감지하고 그것에 반응할 줄 아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더 나아가 저자는 디자인을 세 가지 개념으로 정의합니다. 첫째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기능을 고민하고 경험을 의도하는 것, 둘째는 그 기능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 셋째는 그 둘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우리답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구조는 기획-디자인-브랜딩의 연결고리를 명확하게 보여주며, 디자인을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결국 좋은 기획자는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설계자’이며, 무엇보다도 사용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다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2. 본질을 파악하는 힘: 감각은 결국 연습에서 시작된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본질’입니다. 조수용 저자는 “기획은 상식이다”라는 문장을 던지며, 본질을 바라보는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상식이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부분은 무심코 지나치는 기본적인 진실입니다. 예컨대 ‘볼펜은 잘 써져야 한다’, ‘사용자는 한글을 사용한다’, ‘지하 주차장은 어둡고 복잡하다’ 같은 명제들은 우리가 늘 겪지만, 다시 질문해보지는 않는 것들입니다. 좋은 기획은 이런 상식에 다시 질문을 던지는 데서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전문가는 없다"라는 챕터였습니다. 전공자가 아니면 자격이 없다고 느꼈던 스스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죠. 저 역시 전공은 문예창작이었고, 기획과 마케팅은 경력 속에서 배워온 영역입니다. 책에서 저자는 기획이란 '정해진 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지금 이직을 고민하며 ‘내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될까’ 고민하던 제게 다시 한번 확신을 주었습니다. 더불어 비전공자로서 갖는 ‘다른 시선’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관점도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익숙하지 않기에 새롭게 볼 수 있고, 경험이 다르기에 새로운 결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죠. 기획자의 역할이 결국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전통적인 루트를 밟지 않았다는 점은 단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일 수도 있습니다.
3. 감각은 결국 태도다: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
『일의 감각』은 단순히 기획 기법이나 전략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기획자라는 존재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입니다. 그중에서도 ‘감각의 시작은 마음가짐’이라는 말은 책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로 읽혔습니다. 무보수로 하는 디자인과 10억짜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디자인은 당연히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입니다. 나의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일을 통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감각은 자라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이전에 몸담았던 대행사에서는 포괄임금제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로 밤낮없이 일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 자체는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이 바닥났습니다. 나의 일이 과연 정당하게 평가받고 있는가, 나는 이 일을 계속해도 괜찮은가—이런 질문은 점점 더 깊어졌고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일의 감각』을 읽으며 그 시절을 떠올렸고, 당시 제가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감각은 단순한 센스가 아니라,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는 걸 말이죠. 책에서는 일에 대한 실증이나 두려움을 느낄 때, 새로운 발견을 향한 질문을 던져보라고 조언합니다. "왜 이 일은 지루하게 느껴질까?",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다시금 감각을 복구하라는 제안은, 단지 일뿐 아니라 삶의 태도에도 큰 통찰을 줍니다. 결국 좋은 기획자는 ‘흥미’를 관찰하고, ‘문제’를 발견하며, ‘해결책’을 제안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감각의 힘에서 비롯됩니다.
결론: 감각을 키운다는 것, 본질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일의 감각』은 실무서도 아니고, 단순한 자기계발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은 기획과 디자인, 브랜딩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일’과 ‘사람’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하는 인문서에 가깝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다시 한 번, 기획이라는 일이란 결국 ‘사람의 문제를 감각적으로 해결하는 일’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날카롭게 바라보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요. 기획자든 디자이너든 마케터든, 아니면 단지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도 『일의 감각』은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본질을 놓치지 않고, 사소함을 예리하게 보는 눈을 기르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