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평등』은 마이클 샌델과 토마 피케티 두 석학이 세계적 불평등과 능력주의의 허상을 조명하며 정의롭고 존엄한 사회를 향한 길을 제시한 철학적·경제적 성찰서이다. 개인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능력주의, 돈으로 교환되는 교육과 의료, 점점 멀어지는 공동체의 연대감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평등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능력주의는 공정한가: 허상의 이데올로기를 파헤치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널리 퍼진 신념 중 하나는 바로 능력주의이다.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이 구호는 우리에게 희망과 공정함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 교수는 『기울어진 평등』을 통해 능력주의가 실제로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표면적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구조적 불균형과 사회적 격차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샌델은 능력주의의 가장 큰 문제로 도덕적 자격감을 꼽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를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 덕분이라고 믿는다. 이는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네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는 냉혹한 자기비난을 안겨준다. 이는 실패자에게는 죄책감을, 성공자에게는 우월감을 심어주는 메커니즘이 되어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정신을 약화시킨다. 게다가 이 책은 ‘운’의 요소를 강조한다. 개인이 태어나는 배경, 부모의 경제력, 건강, 지능과 같은 요소들은 통제할 수 없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위에 얹힌 성취만을 개인의 노력으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한다. 이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로 이어진다. 능력주의는 사회 전체가 공정하다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사실상 기득권 유지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된다. 샌델은 미국의 하버드 입시 구조를 예로 들어 상위 10% 소득층 자녀들이 다수 입학하는 현실을 통해 교육의 기회 자체가 이미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 결과 능력주의는 계층 이동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권력의 재생산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울어진 평등』은 이러한 능력주의의 본질을 파헤치며,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온 ‘공정한 경쟁’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사회가 정의롭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회의 균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조적 장애물과 출발선의 차이를 함께 고려해야 진정한 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이다.
불평등의 다층적 구조: 경제·정치·사회 전반에 깔린 기울기
이 책은 단지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샌델과 피케티는 불평등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며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 그 구조를 분석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소득 격차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격차가 어떻게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지위의 차이로 연결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경제적 불평등은 부유한 계층이 양질의 교육과 의료를 독점하고, 자녀에게 더 나은 기회를 물려주는 방식으로 사회 전반의 구조를 기울게 만든다. 예를 들어, 교육이 사적 영역으로 상품화되면 자녀의 미래는 부모의 재산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심화된다. 대학 입시는 더 이상 공정한 경쟁이 아닌, 자본을 투자한 자만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경쟁의 기울기’를 보여준다. 정치적 불평등 역시 심각하다. 부유한 자들이 로비를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동안, 저소득층은 정치에 대한 무력감과 소외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정치적 분리현상은 결국 참여율 저하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사회적 불평등은 일상의 단절로 나타난다. 부자들과 빈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마주칠 일은 점점 줄어든다. 주거, 교육, 여가 공간까지도 분리된 사회 속에서 상호 이해는 점차 사라지고, 계층 간의 간극은 더 넓어진다. 이 책은 특히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에 경고를 보낸다. 단지 재화의 분배 문제가 아니라, ‘기본재’에 대한 접근성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 의료, 주택, 공공서비스 등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 조건들이 시장 원리에 의해 좌우되는 한, 사회적 평등은 실현될 수 없다. 샌델과 피케티는 이 문제의식 속에서 기본재에 대한 포괄적 투자를 주장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연대의 복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불평등은 단지 통계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 그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 문제다. 『기울어진 평등』은 우리에게 경제적 수치 뒤에 숨겨진 인간적 고통과 공동체의 해체를 보게 한다.
대안을 묻다: 존엄과 공동체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구조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대안에 대한 진지한 탐색으로 이어진다. 샌델과 피케티는 단지 기존 구조를 비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진정한 평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다. 그 핵심은 '존엄의 평등'과 '공동체 중심의 정치경제'다. 첫째, 샌델은 모든 직업이 존중받는 사회를 주장한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필수노동자들의 중요성이 드러났지만, 이들의 사회적 평가와 보상은 여전히 낮다. 샌델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직업에 가치를 두는지, 누가 인정받아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 그는 입시와 정치 참여 방식에서의 제도적 전환도 제안한다. 추첨제를 통한 대학 입시나 의회 구성 방안은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현재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오히려 더욱 평등한 접근 방식일 수도 있다. 이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과감한 제도 실험을 통해 진정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현실적 제언이다. 셋째, 누진세제의 강화를 통해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세금은 단지 국가에 내는 돈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회비라는 인식을 확산시키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의 재분배뿐 아니라, 공동의 책임과 연대를 실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공’의 기준을 재정의하는 일이다. 능력주의가 만든 협소한 기준이 아니라, 다양성과 사회적 기여를 인정하는 풍요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학력, 연봉, 직위만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과 기여가 존중받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기울어진 평등』은 단순한 철학서가 아니다. 정치와 경제, 교육과 노동,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식까지 질문을 던지는 실천적 지침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더 기울어져 가는 사회 속에서 이 책은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둘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평등을 다시 사유하다: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울어진 평등』은 능력주의와 시장만능주의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왜곡해왔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하며, 단순한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존엄의 평등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불평등이 단지 돈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의 인정과 존엄, 그리고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깊은 차원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지금의 구조를 돌아보고, 더 정의롭고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어떤 철학과 제도를 선택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