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사피엔스』가 던지는 충격의 역사 질문

『사피엔스』는 인간이 어떻게 별볼일 없던 영장류에서 지구의 주인이 되었는지 탐구한다. 이 책은 인지혁명, 농업혁명, 통합의 시대, 과학혁명이라는 네 개의 장을 통해 인간 문명의 전개 과정을 설명하며, 인간의 상상력과 허구를 믿는 능력이 협력과 통치를 가능케 했다는 통찰을 전한다. 문명의 진보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이 책은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는 왜 '형제 살인범'이라 불리는가?

『사피엔스』의 1부는 "인지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를 조용한 형제 살인범이라 표현한다. 고전적인 진화 도식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지는 선형적 진화 경로를 그리지만, 하라리는 이 해석을 부정한다. 그는 다양한 인류 종들이 같은 시대에 공존했으며, 사피엔스는 이들과의 공생이 아닌, 학살과 배제, 그리고 협력이라는 특수한 방식으로 우위를 차지했다고 본다.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특별한 힘은 신체 능력이나 도구 사용 능력이 아니다. 정약용 선생도 지적했듯이 인간은 날카로운 발톱도, 독도, 날개도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도구를 만드는 능력", 나아가 "협력을 설계하는 능력"으로 인해 지구의 지배자가 된다. 하라리는 이 협력의 기반이 "허구를 믿는 능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허구란 종교, 국가, 돈과 같은 실체가 없는 개념들이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다시 말해 ‘신화’를 만들어 이를 집단적으로 믿는 능력이 있고, 이는 수십만 명의 인간이 동일한 목표 아래 조직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된다. 침팬지는 150마리 이상 모이면 무너지는 반면, 인간은 수만 명의 집단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지혁명이 가능하게 만든 힘이다. 인간은 지어낸 이야기를 믿고 따르며, 이러한 이야기들이 법, 정치, 윤리, 기업, 사회제도로 구체화된다. 이것이 인간 문명의 기반이자, 호모 사피엔스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든 이유다. 그래서 인간은 신체적으로 약하지만, ‘가장 강력한 동물’이 된 것이다.

농업은 진보였는가, 재앙이었는가?

2부 "농업혁명"은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는 진보의 개념에 일침을 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업이 인류를 안정된 생활로 이끌었다고 생각하지만, 하라리는 이를 “역사상 최악의 사기극”이라 표현한다. 왜일까? 구석기 시대의 인간은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아갔다. 이동하면서 먹거리를 찾고, 공동체 내에서 비교적 평등하게 살아갔다. 그러나 농업이 시작되며 인간은 한 장소에 정착하게 되었고, 이는 곧 더 많은 노동, 질병, 계급 발생, 여성의 희생, 전쟁과 소유의 개념으로 이어졌다. 농사를 시작한 인간은 단순히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한 것이 아니라, 농업 생산성을 유지하고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삶은 수렵 채집 시절보다 오히려 여가 시간이 줄고,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체격은 작아지고 질병에 취약해졌다. 가축의 등장도 큰 문제였다. 인간은 가축을 이용하며 다양한 전염병과도 접하게 되었다. 홍역, 천연두, 인플루엔자와 같은 병들은 대부분 동물에서 기원한 것으로, 인간은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감염되기 쉬웠다. 결국 농업은 인간이 스스로를 가축처럼 길들인 행위였고, ‘농업혁명’은 실제로는 ‘노예혁명’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라리는, 인간이 ‘생존과 번식’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삶의 질’에서는 후퇴했다고 평가한다. 이는 단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농업과 문명은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재앙이 되었다. 오늘날 동물들은 자연이 아니라 공장형 축사에서 살아가고, 생물 다양성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인간의 문명화는 생태계 전체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허구가 만든 문명, 돈과 제국과 종교

『사피엔스』의 3부는 인간의 통합과 협력의 기반으로 작용한 세 가지 요소, 즉 ‘돈’, ‘제국’, ‘종교’에 대해 설명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실체가 없는 허구이지만, 수억의 인구를 연결하고 통치할 수 있도록 만든 힘이었다. 먼저 ‘돈’은 가치의 상징이다. 고대에는 조개껍데기, 후에는 금과 은, 오늘날은 종이와 숫자가 된 돈은 인간 사이의 신뢰로 유지된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통화의 대부분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은행 계좌에 존재하는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허구에 대한 믿음, 즉 ‘신용’을 통해 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받고, 세상을 움직인다. ‘제국’은 또 하나의 허구다. 제국은 폭력과 착취를 동반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문명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한다. 하라리는 영국 제국의 인도 지배를 예로 든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했지만, 철도망과 사법 제도, 행정 체계를 도입하면서 인도의 근대화를 촉진했다. 물론 이는 착취와 억압의 결과이기도 하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이야기 시스템이다. 신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지만 사람들은 신을 위해 죽고, 죽인다. 이는 종교가 인간의 집단적 상상력을 결속시킨 결과다. 유일신 종교든 다신교든, 인간은 이들 시스템을 통해 도덕과 질서를 구축하고,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결국 이 세 가지는 인간이 상상력으로 만든 ‘허구’이며, 인간 문명의 틀을 만드는 강력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허구를 믿는 능력이야말로 인간만의 특권이자, 문명을 가능하게 한 ‘인지 혁명’의 결정체다.

사피엔스, 신의 자리를 넘보다

『사피엔스』의 마지막 장은 ‘과학혁명’이다. 하라리는 인류가 더 이상 단순한 생존자가 아닌 ‘신의 위치’에 도달하려는 존재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이제 생명을 창조하고, 죽음을 통제하며, 우주로 나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과학은 인간에게 신성에 가까운 능력을 부여하고 있으며,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데우스(Homo Deus, 신 인간)”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놀라운 발전이 반드시 인간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유발 하라리는 경고한다. “우리는 천국의 문을 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지옥의 문을 여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인간의 미래는 기술이나 과학이 아닌, 인간 자신의 윤리와 선택에 달려 있다. 『사피엔스』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이 책은 인간이라는 종의 정체성과 진보의 방향, 문명의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철학서이자 경고의 메시지이다. 우리는 지금 인류의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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