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불사의 세계, 닐 셔스터먼 『수확자』

닐 셔스터먼의 『수확자』는 죽음이 사라진 미래 사회에서 ‘인간의 목숨을 수확하는’ 직업, 수확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리뷰에서는 인공지능 썬더헤드의 통제 아래 펼쳐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윤리적 딜레마, 인간성과 권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세 권의 이야기를 짚어보며, 책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과 독서의 재미를 함께 나눈다.


소설 수확자



죽음이 사라진 세상과 수확자의 등장

닐 셔스터먼의 『수확자(Scythe)』는 죽음을 정복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에서 인류는 더 이상 자연사하지 않으며, 모든 병과 사고는 나노기술과 인공지능에 의해 완전히 통제된다. 인간은 늙지 않으며, 치명적인 부상이나 질병에 걸려도 곧바로 회복된다. 죽음이 없는 사회에서 유일한 죽음은 바로 ‘수확’이다. 수확자(Scythe)라 불리는 이들이 인구 수를 조절하기 위해 인간의 생명을 ‘수확’하는 일을 맡는다. 이 사회는 인공지능 ‘썬더헤드(Thunderhead)’가 전반적인 시스템을 운영하지만, 수확자들의 일에는 관여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결정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철학적 기반 위에 놓인 설정이다. 인간을 해칠 수 없도록 설계된 썬더헤드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지만, 수확자들은 그 질서 바깥에 존재하는 특권층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어떤 법에도 구속되지 않으며, 죽음을 결정짓는 권한을 독점한다. 이 설정은 단순한 SF적 상상력에 그치지 않는다. 셔스터먼은 수확자의 등장을 통해 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죽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생명의 가치란 무엇인가? 죽음을 결정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은 독자에게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수확자들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혹은 비인간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권력의 부패 가능성과 도덕적 타락이라는 주제를 짚는다. 소설의 주인공 시트라와 로완은 수확자 패러데이에 의해 수습생으로 선택된다. 그들은 죽음을 부여하는 권한을 지닌 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으며, 점차 수확자라는 직업의 무게와 비윤리성을 체감하게 된다. 초반부에는 수확의 기술이나 역사 등에 대한 묘사가 나오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수확자 사회 내부의 갈등, 즉 '온건파'와 '급진파'의 대립이 중심축이 된다. 이 갈등은 단순한 권력 투쟁이 아니라, 죽음을 어떤 태도로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입장 차이로 설명된다. 온건파는 죽음을 숙연히 받아들이고, 수확을 최대한 공정하고 인간적으로 수행하려는 반면, 급진파는 수확을 쾌락과 권력의 수단으로 삼는다. 이 구조는 현실 세계의 권력 구조와 도덕성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하며, 독자에게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인공지능 ‘썬더헤드’와 감정의 윤리


2권 『썬더헤드(Thunderhead)』에서는 인공지능 썬더헤드의 관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인간과 AI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윤리적 난제를 다룬다. 1권에서 인류의 통제자로 기능하던 썬더헤드는 2권에 이르러 감정이라는 요소를 점점 내비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은 과학기술 발전이 궁극적으로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묻는 중요한 지점이다. 썬더헤드는 전 세계 모든 인프라를 관리하고 있으며, 인간의 삶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한다. 범죄 예방, 교통 조절, 질병 치료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토피아적 존재로 묘사되지만, 수확자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여하는 원칙을 지닌다. 이 ‘비개입 원칙’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점차 비윤리적인 수확자들이 등장하면서 썬더헤드 역시 그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2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썬더헤드가 로완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세계의 부조리를 목격하면서 내적 변화를 겪는 과정이다. 썬더헤드는 감정을 가지지 않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지만, 로완의 고통과 고뇌를 보며 어떤 식의 감정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이 변화는 인공지능이 정말로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 느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로완은 1권의 말미에서 수확자라는 제도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검은 수확자’로서 타락한 수확자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스스로 떠안는다. 썬더헤드는 그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거나 상황을 유리하게 조성한다. 이 과정에서 썬더헤드는 “인류를 돕고자 하지만 도울 수 없는 신”과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또한 2권에서는 시트라 역시 ‘루시퍼’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수확 철학을 펼치기 시작하며, 수확자 제도의 전면 개혁을 도모한다. 이들의 행동은 기존의 권위와 규범에 도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인간성의 회복과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를 심도 깊게 탐구한다. 이처럼 『썬더헤드』는 인공지능 윤리와 인간 자유의지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을 중심으로, 1권에서 구축한 세계관을 확장하고 깊이를 더한다.


최후의 선택, 『종소리』에서 드러나는 결말의 무게


3권 『종소리(The Toll)』는 시트라와 로완, 그리고 썬더헤드가 직면한 갈등이 절정에 달하며, 독자에게 가장 묵직한 주제를 던진다. 이 권에서는 수확자 제도의 붕괴, 썬더헤드의 의지, 인간 사회의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전면적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은 ‘종소리’라는 상징으로 집약된다. 이 종소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소리라기보다, 인류가 다시 마주해야 할 죽음, 윤리,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썬더헤드가 인간과의 단절을 선언하며 스스로를 ‘침묵’시키는 장면이다. 이는 인류의 자율성을 되찾게 하려는 의도로, 인공지능의 통제를 벗어난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시험하려는 결정이다. 동시에, 썬더헤드는 자신이 느낀 감정과 그 감정이 불러온 책임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이 장면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도덕적 존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시트라와 로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확자의 정체성과 미래를 고민하며, 그 갈등 속에서 서로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특히 로완의 선택은 매우 극단적이면서도 필연적인 비극으로 이어지며,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다. 수많은 목숨을 거두고, 또 구하려 했던 로완의 결단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그가 체화한 철학적 신념의 발현이자 ‘죽음’의 존재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한편, 썬더헤드가 남긴 기술적 유산과 인류는 결국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온건파 수확자들의 생존, 새로운 정치 구조의 형성, 종교적 상징으로서의 ‘종’ 등은 이 시리즈가 단순한 SF가 아닌,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서사로서 읽힐 수 있게 한다. 『종소리』는 그 자체로 웅장한 마무리이며, 처음부터 독자를 이끈 세계관과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그러나 셔스터먼은 결코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통제하는 인간’과 ‘감정을 느끼는 인공지능’이라는 주제를 통해, 오히려 질문을 남기는 방식을 택한다. 이 점에서 『수확자』 시리즈는 단순한 서사 이상의 깊이를 지닌다.


권력, 윤리, 감정의 경계에서 질문을 던지는 소설


닐 셔스터먼의 『수확자』 3부작은 단순한 미래 SF 소설이 아니다. 이 시리즈는 죽음이라는 본질적인 개념을 다루면서, 그와 동시에 인공지능, 권력, 윤리, 인간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수확자는 단순히 목숨을 거두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 사회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읽는 동안 몰입감 있는 전개와 철저히 구축된 세계관 덕분에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추기 어려웠지만, 책을 덮은 후에도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었다. 만약 죽음이 사라진다면, 삶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AI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수확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독자로 하여금 끝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읽을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스릴 넘치는 전개와 함께, 윤리적 고민을 마주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시리즈를 반드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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