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람, 감정 사이를 오가며 오늘도 나를 회복하는 일에 대하여

하루는 끼니를 챙기는 일로 시작되었다. 냉장고를 털어 만든 대충의 식사, 하지만 그마저도 다정한 루틴이었다. 누군가는 중드를 보고 누군가는 짧은 영상에 빠져 있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책을 떠올렸다. 오늘은 찬호께이의 책을 읽고, ‘진격의 거인’의 결말을 스포로 접하며 감정이 폭발했고, 누군가의 말에 웃고 울었다. 사람 사이에서 무심코 스치는 말 한마디에도 깊은 상처를 받고, 그 와중에 또다시 회복하며 살아간다. 인간관계는 어렵고, 감정은 복잡하고, 세상은 번잡하지만, 그 모든 걸 버텨내는 일이 일상이고, 그래서 나를 조금씩 회복시키는 여정이 된다.


마침내안녕



생각보다 무거운 하루의 시작, 그리고 감정의 폭발

하루는 그저 평범한 아침 식사로 시작됐다. 냉장고 속 재료를 털어 대충 만든 식사지만 그 안엔 작은 결심들이 담겨 있었다. 끼니를 챙기는 일, 그 자체가 삶을 붙드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식사로만 끝날 하루가 아니었다. 쇼츠 하나를 무심코 본 순간, 진격의 거인의 결말을 스포당하며 10년 넘게 함께했던 이야기에 갑작스레 종지부가 찍혔다. 스포 하나로 감정이 무너지는 경험,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왜 그 이야기 하나에 이렇게도 몰입했을까. 캐릭터 하나하나에 감정을 이입하고, 스토리의 결말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함께 살아낸 듯한 무게였다. 에렌의 마지막 대사에 울컥하고, 리바이의 사사게요에 가슴이 저미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유현준 교수의 리뷰 영상, 이야기의 배경과 철학적 의미까지 곱씹으며 밤이 되었다. 이는 단지 애니 하나의 감상이 아니었다. 나의 청춘, 나의 감정, 그리고 지금까지의 시간을 통째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였다. 이렇듯 일상의 시작은 사소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경험하는 감정은 때로 너무도 벅차고 진하다. 나는 종종 이런 감정의 폭발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한다.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채근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멈춰야만 하는 이유를 되뇐다. 인간관계, 일, 책임, 감정, 모든 것이 엉켜 있는 이 일상 속에서 때때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안고 살아간다.


책 속에 숨은 나의 마음, 『고독한 용의자』를 읽으며


도연의 이야기를 만났다. 찬호께이의 『고독한 용의자』 속 그녀는 임상심리사였고, 지금은 가사조사관이다. 타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조사하는 일이 그녀의 업무이지만, 정작 그녀 자신도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마주하고 있었다. 가족의 죽음, 상사의 폭력, 지워지지 않는 과거. 그리고 오늘의 직장에서 다시 마주하는 갈등.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내 감정도 흔들린다. 특히 그녀가 “나는 이제 절대 열심히 살지 않을 거거든요”라고 말할 때, 나 역시 그 다짐에 공감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돌아온 건 상처와 회의감뿐. 인간관계 속에서 경계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과 그녀가 많이 닮아 있었다. 나 역시 관계를 피하려고 노력하고, 상처받기 싫어 사람을 밀어내며, 그러면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한다. 아이러니한 감정의 교차점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읽는다. 책 속의 도연은 강인하지만, 동시에 매우 인간적이다. 상처에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또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변화를 믿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그 반대였다. “좋은 방향으로 키를 맞추지 않으면, 우리는 더 쉽고 편한 나쁜 방향으로 이끌린다.” 이 말이 가슴 깊이 박혔다. 나도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치유 이야기이며, 나를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이었다. 누구라도 공감할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너무도 섬세하고 적확했다. 그 안에서 나는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관계의 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연결


사람과의 관계는 늘 어렵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때로는 아무 일도 아닌 일들이 관계를 흔든다. 나는 사람을 쉽게 좋아하지 않지만, 한 번 마음을 열면 쉽게 물러서지 못한다. 그래서 더 피로하고, 더 외롭다. 이해받지 못할까 두렵고, 동시에 누군가를 이해하려다 지치기도 한다. 책 속 도연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조사실에서 만난 사람들, 직장 동료들, 그리고 과거의 상사. 그들 모두는 그녀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고, 때론 상처였고, 때론 치유였다. 이 관계의 고리를 끊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사람은 결국 연결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없기에, 때론 밀어내고 때론 끌어안으며 균형을 맞춘다. 내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도연도 그랬다. 그녀는 최선을 다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도 그렇다. 말은 줄이고, 감정은 숨기고, 사람은 멀리하지만, 결국 사람에게 위로받는다. 어떤 문장, 어떤 말, 어떤 행동 속에서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피로하지만, 동시에 살아가는 힘이다. 나를 다시 걷게 하는 이유, 그건 결국 누군가의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도연에게 그런 말이 있었다. “잘 하고 있음이 의심될 때는 말해주세요. 잘 하고 있다고 말해줄게요. 하지만 잘 안 해도 괜찮아요.” 그 말이 나에게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인간관계 속에서 지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건 때로는 위대한 변화가 아니라, 작지만 진심어린 응원 한마디일지도 모르니까.


오늘도 무사히, 그래서 조금은 다정하게


긴 하루였다.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탔고, 눈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쏟아졌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책 한 권, 애니 하나, 사람 하나가 나를 울리고 웃게 만들었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하루를 통과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매일을 무사히 보내는 일. 그리고 그 무사함 속에서 조용한 기쁨과 회복을 발견하는 일이다.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사람 때문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오늘 하루, 그런 조용한 회복의 순간을 마주하길 바란다. "잘 안해도 괜찮아요." 이 말이 오늘의 결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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