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은 박물관 연구자이자 사학자인 수바드라 다스가 서구 중심의 역사 관점을 해체하며 ‘과학’, ‘문자’, ‘법’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인류를 구획하고 배제해왔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하는 책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책이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개안의 순간”을 제공한다고 평가하며, 세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관점을 완전히 뒤흔드는 경험을 전한다. 이 글은 그 리뷰 내용을 토대로 책의 핵심 세 가지 프레임을 분석한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무기화된 분류 체계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의 첫 번째 인상 깊은 장은 ‘과학’이라는 프레임에 대한 재해석이다. 저자는 과학이 결코 순수하거나 가치중립적인 탐구가 아니며, 때로는 서구 중심의 지배적 담론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독일의 우생학자 오이겐 피셔가 만든 인종 분류 샘플이다. 인간의 머리카락을 색깔별로 정리한 이 샘플은, 실제로 나미비아 지역에서 수집된 것으로, 다양한 혼혈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통해 인종적 우열을 과학적으로 분류하고자 했던 시도였다. 이는 나치즘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과학이 이미 인종주의와 밀접하게 결합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다스는 과학이 자연의 법칙을 기술하는 순수 학문이 아니라, 인류의 ‘우월함’을 구분하고 위계를 매기는 수단이 되어왔음을 지적한다. 린네의 분류체계, 다윈의 진화론이 만들어낸 적자생존 개념, 그리고 찰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이 주장한 ‘우생학’은 그 명백한 증거다. 특히 골턴의 사상은 나치의 인종청소, 미국 내 장애인 강제 불임 시술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과학은 이처럼 권력을 가진 자의 손에서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으며, 그것이 ‘객관’의 탈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는 통찰이 이 장의 핵심이다.
문자, 말 없는 문명은 존재하지 않는가?
두 번째 인상적인 프레임은 ‘문자’에 대한 서구의 편견과 오해를 다룬 장이다. 문자가 없다는 이유로 문명을 야만적으로 규정한 사고방식은, 실제로 많은 비서구 문명을 저평가하고 지워버리는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인 예는 잉카제국이다. 잉카는 광대한 영토,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계, 정교한 건축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문자’가 없다는 이유로 열등한 문명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이 책은 잉카제국이 문자 대신 ‘키푸’라는 정교한 매듭 기록 체계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주목한다. 키푸는 실의 색, 길이, 매듭 방식 등에 따라 복잡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체계로, 현대 연구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회계 도구가 아니라 정식 언어 체계였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문자는 반드시 종이에 기록된 알파벳이어야만 한다는 서구 중심적 시각은, 다양한 문명들의 고유한 기록 체계를 지워버리는 데 기여했다. 서구 문명이 아닌 곳에서 만들어진 건축물들에 대해서는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음모론이 유독 자주 등장하는 것도 문자나 기록이 없다는 편견과 연관된다. 피라미드, 테오티우아칸, 페루의 거대한 신전 등은 너무나 정교해서 ‘저열한 문명’이 만든 것이 아닐 것이라는 사고가 낳은 결과다. 반면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는 그런 의심이 없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뿌리 깊은 문명 서열화를 체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가 행해질 때: 법이라는 프레임
세 번째로 조명된 프레임은 ‘법’이다. 법은 일반적으로 정의와 공정성을 보장하는 장치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권력자가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해왔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다. 이는 흔히 법치주의의 근간으로 칭송받지만, 실제로는 소수 귀족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건일 뿐이며, 대다수 백성의 권리는 고려되지 않았다. 그나마 진정한 자유의 가능성을 품었던 ‘안보 조항’ 역시 실제로는 서명 몇 주 후 바로 무시되었다. 삼림헌장은 이와는 다르게 일반 서민들의 경제적 권리를 일정 부분 보장하던 문건이었지만, 결국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몰락한다. 인클로저는 귀족들이 울타리를 치고 땅을 사유화하면서 공동체의 공유지를 빼앗은 사건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밀려나 비참한 노동자가 되었으며, 법은 이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땅주인들이 입법자가 되어 그 권리를 정당화해주었다. 미국 체로키 족에 관한 사례는 더 충격적이다. 체로키는 언어와 헌법, 선거제도까지 갖춘 고도로 조직된 원주민 공동체였다. 그러나 ‘발견의 원칙’이라는 근거 아래, 미국 대법원은 체로키 족이 자신들의 땅을 미국 연방정부에만 팔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결국 이들은 강제 이주당하고 수천 명이 사망하게 된다. 이 과정에 활용된 것도 ‘법’이었다. 이처럼 법은 때때로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를 저지르며, 그 시대의 권력자와 입법자의 수준만큼만 정의로웠다.
프레임 너머를 보는 법을 배우는 시간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온 세계관, 정의, 문명, 과학이라는 프레임들을 낱낱이 해체해주는 책이다.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러한 개념들이 작동했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서술함으로써 독자에게 강력한 인식을 제공한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의심은,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첫걸음이다.

